Localization, internationalization, globalization

가끔 비딩 문구에 보면 “website localization” 같은 문구가 나옵니다. 그게 뭔지 제게 물어 보는 분들이 계셨고 또 localization을 translation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는 것 같아서 개념 정리를 좀 해 보고 싶습니다.
 
우선 localization은 어떤 제품이나 서비스를 특정 언어, 문화, 지역에 맞도록 적절히 변형하는 것입니다. 목표는 다른 언어, 문화, 지역에서 처음 개발된 제품이나 서비스가 목표 지역, 목표 언어, 목표 문화로 가서 최소한 불편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나아가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도록 특정 언어, 문화, 지역의 정서에 맞추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것”처럼 느껴지니까요.
 
이렇게 적절하게 변형해야 할 것은 끝도 없이 많습니다. 물론 가장 큰 것은 언어입니다. 그러나 그 외에도 나라나 문화권마다 법도 다르고 공휴일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고 경제 수준이나 남녀의 성 역할이나 위계질서에 대한 의식 등도 다 다르기 때문에 상당한 감수성을 가지고 조심스럽게 진행해야만 합니다.
 
이렇게 보면 localization은 번역을 포함하지만 번역보다 훨씬 큰 개념이고, 소스 문서를 정확하게 옮기는 것을 목표로 하는 번역과는 목표 자체가 상당한 정도로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그런 localization은 번역가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실, 번역가에게 문서 꾸러미를 던져주면 “localization”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그리고 번역가들)이 있어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해당 상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한 개인이나 회사가 번역가나 현지 회사의 자문과 도움을 받아 크고 작은 많은 의사 결정을 내려가면서 진행할 수 있는 것이 localization입니다.
 
그런데 그런 localization이 가능하려면, 애초부터 localization을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시작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서 캐나다에서 판매할 자동차 광고 문안을 한국어로 “localization”을 한다고 하면, 그런 것은 도무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캐나다에서 판매할 목적으로 자동차 광고 문안을 만들었다면 그건 캐나다의 기후, 지형, 문화, 역사, 언어에 꼭 맞게 만든 것이고 그래서 캐나다 사람이 보면 바로 이해하고 공감하고 좋아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건 “번역”을 한다고 해서 localize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많은 서구인들이 아직도 다른 나라나 지역의 언어와 문화에 매우 무지하기 때문에, 그리고 번역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오해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런 무지에 기초해서 어떤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기 때문에 결과가 좋을 수가 없습니다. 번역가가 아무리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번역을 해도 그건 결코 localization이 아닙니다. 또 엉터리 번역가가 원문에 담겨있는 뉘앙스와 역사와 정확한 의미를 싹 무시하고 현지에서 쓰이는 “비슷한 문구”로 말을 대체해 놓는다면, 그런 것 만들어 내려고 그 길고 복잡한 과정을 진행하는 것은 한마디로 돈과 시간의 낭비죠.
 
그래서 어떤 상품이나 서비스를 다른 언어, 문화, 지역에 맞게 localization을 할 작정이라면, 처음 출발점이 되는 원문 자체를 localization이 가능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언어와 관련해서 예를 들면, 북미의 광고들은 기본적으로 wordplay(때로는 pun)가 들어 있습니다. 그런 wordplay를 다른 언어와 문화 출신인 사람에게 설명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자주 쓰이는 문구, 속담, 유행어, 최근에 발생한 유명한 사건 등등에 빗대면서도 말을 살짝 바꾸어 순간적으로 짜릿한 느낌이 들게 만드는 것이므로, 북미의 특정 선전을 왜 저렇게 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북미 사회에 한참 뿌리 박고 산 사람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광고 문구는 localization을 할 수 있는 출발점이 되지 못합니다. 대신 그런 특정 언어나 지역의 특수성을 배제하고 다른 언어와 문화에 (어느 정도) 쉽게 적응할 수 있는 형태로 문구를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internationalization입니다.
 
저는 아이키아의 가구 조립 매뉴얼이야말로 가장 훌륭한 internationalization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는 말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림으로만 되어 있고 조립 순서를 알 수 있도록 아라비아 숫자가 표시되어 있을 뿐입니다. 그러니 쉽게 다른 지역으로 확장해 나갈 수 있는 것이죠. 물론 확장해 나갈 때 여러 가지 준비를 하고 고려를 해야 하겠지만, 적어도 제품은 그냥 실어가면 되니까 상대적으로 얼마나 쉽습니까?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이런 것을 상대적으로 많이 의식하여 준비를 하는 회사들, 심지어 제품 개발 단계에서부터 internationalization을 해 나가는 회사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또 번역 에이전시들도 최종 고객에게 이런 부분에 대한 의식을 심어주려고 노력하는 것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점점 더 최종 고객이든 중간에 끼는 다양한 에이전시들도 이 과정을 더 잘 이해하리라고 생각합니다. 요즘도 마이크로소프트 워드가 그런 소리 하는지 모르겠지만 옛날에 “(다른 어떤 소프트웨어보다) 한글을 더 잘 안다”는 문구로 한국 소비자에게 접근한 적이 있습니다. 진위 여부를 떠나 그런 정신이 제품 단계에서부터 나타나는 internationalization이지요.
 
위와 같이 처음부터 internationalize를 해서 그것을 다시 localize한 제품이나 서비스를 globalization이 되었다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저 공중에 붕 뜬 internationalization이 아니라 구체적인 지역, 언어, 문화로 정조준해서 다시 조정한 것이야말로 진정한 globalization이 된 제품이나 서비스입니다.

 

localization, internationalization, globalization
localization, internationalization, globalization

(이미지 출처: http://commons.wikimedia.org/wiki/File:Globalisationchart.jpg)

 

제가 설명을 길게 한 것은 번역 시장에서 터무니없이 오용 되는 소위 “localization project”를 조금이라도 바로잡을 수 있을까 해서 입니다. 위에서 설명드렸듯이, 이미 internationalize된 문서가 바로 localize할 준비가 된 문서입니다. 그리고 그런 localization에 번역가가 핵심적인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이름을 적당한 한국 발음으로 표기해 주고, 금액이나 도량형도 잡아 주고, 심지어 그런 과정에서 발견되는 특정 문제들에 대한 조언까지도 (요구할 수는 없지만 덤으로) 해 줄 수 있는 대단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바로 번역가입니다. 그러나 이런 번역가의 대단한 능력에도 불구하고 번역 자체는 localization이 아니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요구하는지 처음부터 매우 명확하게 해 두지 않으면 결국 모든 사람이 시간과 돈을 낭비하는 결과만 생깁니다. 만약 제품이나 서비스를 소유한 최종 클라이언트와 localization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중간 에이전시들(번역 에이전시이든 광고 회사든 아니면 그 어떤 다른 형태이든)이 이런 internationalization – localization – globalization 과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그런 과정에 애매하게 번역가에게 모든 책임이 지워진다면, 그것은 목수에게 집안 구조가 맘에 안 든다고 불평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집을 짓는 데 목수의 역할은 지대하지만 목수가 작업을 하기 전에 다른 일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면 목수의 솜씨는 낭비될 뿐입니다. 또 목수(번역가)가 훌륭하게 작업을 한 뒤에도 다른 여러 전문가들이 결정하고 실행해야 할 문제들이 많습니다.
 
요는, localization project는 그게 정확하게 뭔지 아는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정확하게 뭔지 아는 사람/회사는 번역가에게 작업 요청을 매우 구체적으로 할 것이고 또 그 이상을 요구하지도 않습니다. Localization이 잘 되려면 물론 번역가의 실력이 뛰어나야 하지만(사실, 번역가의 실력이 부족하다면 localization이 제대로 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 개념 자체가 번역보다 훨씬 큰 개념이기 때문에 자기들이 뭘 하려는 건지도 모르는 사람들과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Localization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전에 그런 프로젝트를 제시하는 사람들이 localization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지, 그리고 작업의 범위가 명확하게 제시되는지 확인해 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고객을 잘 알아보는 것, 고객을 잘 고르는 것은 프리랜서 번역가가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안목과 기술입니다.

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One comment

  1. 그렇군요..Localization에 그런 광범위한 의미가 있군요…

    컴퓨터업계에서는 각 지역에 소프트웨어를 배포할 때 현지언어로 현지화시키는 것을
    Customization이라고 하는데, 일종의 Localization 이군요..

    귀중한 정보 대단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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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