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루프리딩에 대한 이해(6) 에이전시가 프루프리딩을 악용하는 사례

이번 포스트에서는 프루프리딩에 대한 이해 시리즈의 마지막 포스트로서 프루프리딩을 번역가나 에이전시가 악용하는 사례를 살펴보고 그것에 대처하는 방법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프루프리딩의 가격은 번역의 가격과 마찬가지로 어디까지나 번역가와 에이전시 사이의 문제이기 때문에 뭐라고 기준을 제시할 수는 없습니다. 제 경우에는 번역료율의 삼분의 일 정도를 받습니다. (저는 프루프리딩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해야 할 때는 그 정도로 받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대부분의 번역가들이 저처럼 번역료율보다 프루프리딩의 요율을 싸게 하기 때문에 일부 에이전시에서는 희한한 짓(?)을 하는 것 같더군요. 번역을 아무렇게나 해 놓고(비딩을 통해 무지 싼 가격에 질이 낮은 번역을 사는 것이죠), 그 뒤 별도의 프루프리딩 프로젝트를 만들어 내서는 좋은 번역가에게 시키는 것이죠. 이런 관행은 경멸할 만한 것입니다. 프루프리딩은 어디까지나 제대로 된 번역의 실수를 잡아내주는 차원의 작업이지, 엉망진창으로 된 번역, 원문을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한 번역, 기본적인 문법이나 맞춤법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는 번역을 확 뜯어고치는 작업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게 하려면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거든요. 숫제 처음부터 아예 번역을 다시 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은 때가 많습니다. 애당초 번역 자체를 엉망진창인 상태로 아무렇게나 끝내 놓고(싼 가격에 초긴급 데드라인으로 알지도 못하는 무성의한 번역가에게 맡기면 백발백중 그렇게 되죠), 그것을 일을 성실하고 꼼꼼하게 하는 번역가에게 맡겨서 전체 프로젝트 자체를 매우 싼 가격에 끝내려고 하는 것은 에이전시의 꼼수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프루프리딩 프로젝트의 내용이 되는 번역물을 자세히 검토해 보지 않고 ‘상당히 괜찮은 번역가’가 번역했다는 말만 믿고 프루프리딩 프로젝트를 덥석 맡았다가는, 그것을 끝내는 데 번역을 새로 하는 것보다 시간이 더 많이 걸릴 수 있습니다. 번역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와 배신감은 또 어쩌고요… “어떻게 이런 것을 번역이라고…”하면서 속을 부글부글 끓이는 것이죠. 나도 아무렇게나 해서 보내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자신의 커리어와 명성을 망치는 길입니다. 비록 프루프리딩이지만 저의 이름이 걸린 것이고, 그것이 저의 번역 일의 질이 평가를 받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아예 프로젝트를 맡지 않았으면 모를까 일단 맡은 다음에는 최선을 다해서 완수하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이런 한심한 사태를 미연에 방지하자면, 일단 프루프리딩이 별개의 프로젝트로 비딩 시장에 나오는 경우에는 아예 쳐다보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일을 하다 보면 좋은 에이전시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 하는 경우가 생기기도 하겠지만, 상습적으로 그렇게 프루프리더를 구하는 에이전시는 꼼수를 아예 자기네 비즈니스의 일부로 정착시킨 것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아무튼, 이런 일을 당하여 많은 시간을 허비하지 않으려면, 다음과 같은 조심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1. 프루프리딩은 이미 알고 있는 좋은 에이전시에게서만 받는다.
  1. ‘번역가’가 최소한 ‘reasonably good’이라는 확언을 에이전시에게 받은 후에야 시작한다.
  1. 만약 자기들이 ‘새로 협력을 시작한 번역가’라는 식의 답이 돌아오면, 프로젝트를 수락하지 않는다.

 

위와 같은 것이 저의 프루프리딩에 대한 생각입니다. (물론 어디까지나 제 생각과 입장일 뿐이고 여러분은 다르게 느끼시고 다른 전략을 가지고 접근해 나가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생각을 가지고 몇 년을 하다 보니까 결국은 프루프리딩은 거의 하지 않게 되더군요. 예외적인 상황을 빼고는요. 그러나 이것도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이고, 또 앞으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제가 가장 바라는 상황은 이런 것입니다. 정말 번역 잘 하는 분의 프루프리더가 되는 것이죠. 사실 그러면 비록 제 통상적 번역료율의 삼분의 일만 받아도 시간당 소득은 훨씬 더 높거든요. 또한 앞의 포스트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많이 배울 수 있고 TM을 축적할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아직 그런 날은 올 기미가 보이지를 않습니다. 그런 날이 속히 오기를 기대해 봅니다… :D

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2 Comments

  1. 얼마전에 링크드인 통해서 Vistatec이란 곳(아일랜드)에서 한국내 클라이언트 사무실서 주당 20시간.. 정도의 프리랜스 리뷰어를 구한다고 연락이 왔는데요. 출판이나 IT Tech 쪽의 경력이 조금은 있는 편이긴 합니다. 이런 경우에도 위에서 말씀하신대로 주의해야 할 오퍼인가요?

    • 지금 말씀하신 것만 가지고는 판단할 수가 없어요. 그 업체의 신용이나 실제 레이트를 알아보시고 판단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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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