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안 개구리 한국 출판 번역 시장

오늘 일하기 싫은 우중충한 날씨에 한동안 돌보지 않았던 블로그나 돌보자는 마음으로 한국에서 혹시 나와 비슷한 내용을 누가 제공해 주고 있지는 않을까 하고 여기저기 알아보았습니다. 번역의 세계를 소개해 주고 재능 있는 분들이 이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제가 설정한 이 블로그의 가장 중요한 목적이자 소임이었거든요. 물론 저 자신의 현황과 나아갈 길을 스스로 정리해 보는 목적도 있고요(전자는 달성이 잘 안 되고 있고, 후자는 너무 잘 달성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ㅎㅎ).

그런 목적으로 연초에 블로그들을 찾아보았는데 특별히 없었고 그래서 제가 한국어로 블로그를 만들었던 것이죠. 그런데 한국의 검색 엔진 1위가 네이버라기에 거기 블로그를 만들려고 했더니 저는 외국인이어서 회원가입도 안되더군요. 참, 무슨 인터넷에 국적이 필요한지. 그래서 검색 엔진 2위인 다음에 6월에 블로그를 만들었어요. 잘 몰라서 고생을 많이 하면서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다음에 제가 회원 가입이 된 것은 실수로 된 것이더군요. 원래는 외국의 IP에서 가입하는 것을 원천봉쇄하고 있더라고요. 해킹의 위험 때문에 그렇게 했다는 설명을 나중에 찾아서 읽었습니다. 졸지에 외국의 해커가 불법으로 가입한 셈이 되었죠. 그래서 한 20일 만에 겨우 만들었던 다음 티스토리 블로그를 폐쇄하고 7월 초에 구글의 블로그 플랫폼인 블로거에 제 블로그를 다시 오픈한 것이 지금 저의 블로그입니다. [나중에 추가: 9월 초에 거기서 다시 이사해서 워드 프레스로 왔습니다.]

여기서도 한국 사회의 정말 말도 안 되는 폐쇄성을 볼 수 있지요. 캐나다에서 네이버에 접속하면 해커로 보는 거지요. 저는 컴맹을 겨우 면한 정도의 사람인데…… 그리고 항의도 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의논도 하려고 했는데 도무지 항의도 의논도 할 방법이 없더군요.

위에 이미 지나간 이야기까지 꺼낸 이유는 좀 화가 나서 그런 겁니다. 사실 오늘 한국에 번역을 소개하는 책이 출판된 것이 있나 검색해 보았거든요. 제가 열심히 쓰는 내용을 어느 분이 먼저 다 소개해 두었으면 제 노력이 좀 무색해지잖아요? 그래서 좀 알아보려고요. 그러다 책을 한 권 발견했습니다. 김우열 님께서 쓰신 “나도 번역 한 번 해볼까?”라는 책이 있더군요. 조만간 주문해서 읽어 볼 생각입니다. 열 받은 김에 하나 더. 책 하나 주문하려고 해도 외국에서 발급된 신용카드로는 한국 인터넷 서점에서 주문도 안되더군요. 도대체 무슨 IT 강국이란 나라가 이렇죠? 걸핏하면 주민등록번호 넣으라고 하고 한국에서만 사용되는 휴대폰 전화번호 넣으라고 하고… 그러니 한참 뒤적이다가 결국은 회원 등록조차도 못하고 포기하고 말았죠. 그래서 한국 책은 여기서 서점 운영하시는 분께 부탁드려서 그분이 책이 도착했다고 하면 제가 30분이나 운전해서 가서 직접 사 오곤 합니다(왕복 교통 시간만 1시간 소요!). 그에 반해 아마존은 저희 집에까지 택배로 배달해 주죠. 중간중간에 status update까지 이메일로 계속 보내주고요. 전 미국에서든 영국에서든 제 컴퓨터 앞에 앉아 뭐든 주문하지만 불행하게도 한국의 물건은 사지를 못하네요. 참 대단한 나라입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아까 그 책. 그 책은 제가 아직 못 읽어 보았지만 번역가가 되는 길에 대해 한국의 유명한 번역가께서 소개를 하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제가 발견한 곳은 그 책에 대한 서평을 올린 사이트였습니다:
http://careernote.co.kr/423

그런데 그 책에 대한 서평에 이런 것이 있더군요. 몇 개 직접 인용합니다.

“월 평균 400만 원, 유망 전문직/나도 번역 한번 해볼까?”를 헤드 카피로 놓고 기사식으로 쓰여진 광고는 이 땅에서 번역자로 산다는 것이 마치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신직종인 양 이야기하고 있다.

독자는 고기가 아니다. 낚여야 할 대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광고의 성격상 더 포장을 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도라면 그것은 광고가 아니라 사기다.

물론 서평을 쓰신 분은 그것이 책 자체에 대한 것이라기보다는 책 앞뒤에 있는 출판사의 광고 카피에 대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으니까 저자에 대한 공격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서평을 쓰신 분은 번역 일은 형편없는 일인데 저자와 출판사가 무슨 대단한 일처럼 소개했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 뒤 다른 번역가의 좀 나은 서평이 있더군요. 그리고 그 글은 마지막에 이렇게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대한민국에서 번역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대단히 춥고 배고픈 일이다.

참, 기가 막히고 어이가 없습니다. 한국이 우물 안 개구리라는 것은 오래전부터 느꼈지만 참 이렇게 정보가 없을까, 그리고 정보가 없으면서도 이렇게 용감하게 글을 쓸까 하는 생각에 서글퍼지기까지 합니다. 저는 더 이상 한국 국민이 아니지만 저의 모국이며 제 친척들이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 잘 되어 나가길 정말 바라는 사람이고, 특별히 재능은 있지만 진로를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이 길을 찾아 나가기를 바라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겉으로는 정말 잘 나가는 나라인데 왜 이다지도 자기 속에 갇혀서 헤어나지를 못할까? 조금만 눈을 들어서 바깥을 보면, 아니 더 정확하게는 인터넷만 뒤져도 세상이 보일 텐데 왜 이렇게 답답하게들 살까?”하는 생각에 화가 치밉니다.

물론 제 블로그에서도 누누이 이야기했듯이 번역가가 되는 것이 결코 만만한 일은 아닙니다. 그것은 계속 노력하고 공부하는 삶을 선택하는 것이고, 대신 재정적 윤택함과 시간적 자유를 누리는 길입니다. 그래서 적성이 없으면 아예 시작하면 안 된다고 초기 포스트에서부터 누누이 강조해 왔습니다. 그리고 번역가로서 성공적으로 산다는것이 꼭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자기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시간적 자유와 재정적 안정을 누리면서 행복하게 살면 그것이 성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물론 거기서 어느 정도의 재정적 안정은 필수적인 요소이지요. 북미에서 프리랜서 번역가의 수입은 제가 다른 포스트에서 이미 소개했으니 여기서 따로 소개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북미에서 프리랜서 번역 비즈니스를 잘 운영해서 재정적으로 성공했다고 말하는 수입의 기준은 10만 불입니다. 대다수는 거기에 미치지 못하지만 그래도 상당한 숫자는 거기에 도달합니다. 심지어 20만 불을 버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그런 경우는 언어짝(language pair)이 매우 희귀하거나, 대단히 전문화되었거나, CAT tool과 음성 인식 프로그램 등의 기술을 잘 사용하거나, 혹은 이 모든 것을 다 조합한 경우일 것입니다.) 여기 제가 좋아하는 영어로 운영되는 번역 블로그를 소개합니다:
http://thoughtsontranslation.com/2011/03/07/how-much-do-freelance-translators-earn-is-it-enough/

번역가의 수입에 대한 자료는 참 희귀한데 여기 좀 오래되었지만 꽤 자세한 자료가 제시되어 있습니다. 자료를 보시면 그게 2008년(미국이 경기 침체로 들어가던 해 기준으로 10만 불 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많이 벌지 않더라도 번역 수준이 높기만 하고 어느 정도 마케팅을 할 줄 안다면 75,000불은 버는 것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포스트도 Corinne이 이미 2011년에 작성한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은 당연히 그것보다 높게 잡아야 하겠지요. 사실 부끄럽지만 별것 아닌 저만해도 작년에 남 부럽지 않은 매출을 올렸습니다. 올해는 처음부터 일을 줄이기 위해 목표를 하향 조정해 두었으므로 작년 수준에 도달하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매출액이 그다지 많이 떨어지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굳이 쑥스럽게 제 얘기까지 하는 것은 한국의 한심무쌍한 멘탈리티 때문입니다. 한 달에 400만 원이면 미화로 4천 불도 안 되는 돈인데, 수준급 번역가가 그 정도 벌 수 있다고 책에서 말한 것을 사기로 묘사하다니 참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글을 다시 읽고 몇 가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첫 번째는 한국에서 번역이라고 하는 것이 출판사를 통해 수주를 받아 문학 서적을 번역을 하는 것으로 한정되어있는 것 같습니다. 저도 캐나다에서 책 두 권을 출판했습니다. 하지만 수익은 거의 없습니다. 내용이 대중적으로 팔리는 것이 아니어서 돈이 벌리는 책이 아닐 뿐만 아니라, 책을 통해 수익이 나지 않는 시대라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으므로 처음부터 아무런 재정적인 수익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쓰고 있는 블로그만 해도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전제로 하고, 그것에 맞게 글을 쓰고 있습니다.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 하면, 출판을 위한 책 번역은 그것이 문학이든 논픽션이든 더 이상 수익이 제대로 나기가 힘들다는 것입니다. 물론 텔레비전과 인터넷의 도래에도 불구하고 라디오가 살아남듯이, 책도 살아남을 것입니다. 하지만 출판사를 위해 책을 번역하는 것을 번역가의 주된 작업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 참 말이 안 되는 발상입니다. 앞에 인용한 한국 사이트에서 원고지 한 장에 몇 원 어쩌고 하는 걸 보고 거의 졸도할 뻔했습니다. 정말 한국에서는 아직 원고지에 번역을 하는 것인지. 그럼 영어는 원고지에 어떻게 적는지 궁금해지네요.

제 블로그 초기 포스트에서 썼듯이 오늘날 번역 시장은 인터넷에 존재합니다. 이런 기본적인 사실조차도 한국에는 알려지지 않은 것 같습니다. 놀랍다 못해 참 미스터리입니다. 오늘날과 같은 인터넷 시대에 어째서 이런 기본적인 것조차 한국에는 알려지지 않는 것인지. 하기야 한국어를 이렇게 잘 하는 저도 제 블로그를 네이버와 다음에 설치하지 못하고 구글에 설치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정확하게 한국인의 95%는 아예 제 블로그에 들어와 볼 기회조차 없겠죠. (한국 검색 엔진 시장에서 네이버의 점유율 80%, 다음은 15%. 구글은 겨우 2%.) 뭐, 그렇게 생각하니 그다지 미스터리도 아니네요.

우물 안 개구리 대한민국! 번역가가 ‘400만원’ 벌 수 있다는 얘기를 사기라고 단언하는 대한민국, 참 답답한 마음으로 글을 맺습니다.

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9 Comments

  1. 외국인이 가입 안된다는 사실은 처음 알았어요..국내 포털 사이트는 국내시장으로만 만족하는 걸까요;; 인터넷 강국이라면서 아이러니하네요ㅠㅠ
    그간의 주민번호 수집 때문에 한국에서는 지금 이미 다수 국민의 개인정보가 더 이상 나만의 정보가 아닌 문제들이 속출하고 있어요.ㅠ

  2. 네이버와 다음에 대한 저의 답답함과 서운함은 아직도 안 풀리고 있어요. 도대체 문의할 길도 없고, 항의할 길도 없고, 설명이나 설득을 할 길도 없고 … 뭐 하나 가입하려고 하면 툭하면 한국에 있는 셀폰 번호 입력하라고 하는데 당연히 저는 없으니까 도무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외국에 사는 사람들은 그냥 무시하고 마나 봐요. 요즘은 해외직구니 하면서 한국 사람들은 외국에서 물건도 쉽게 사는 것 같던데, 저는 한국에서 물건 사는 것도 이제 포기했어요. 아는 사람들에게 부탁해서 사서 소포로 부치라고 하죠. 한국 사회와 특히 한국 인터넷 업계의 폐쇄성은 가히 신기할 정도인 것 같습니다. 엉터리 영어로 무슨 표기를 해 놓기 이전에, 우선 한글 아는 사람부터라도 물건이라도 사고 회원 가입이라도 할 수 있게 해 두는 것,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일까요?

  3. 안녕하세요. 번역 어플리케이션에 다니고 있는 회사원입니다.
    제가 번역가로써 활동하는 것은 아니지만 번역플랫폼 회사에 다니면서 번역을 요청하는 사람과 번역하는 사람의 니즈를 중간에서 맞춰주는게 참 쉽지 않구나 를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가끔 번역가분들을 만나보면 많은 불만을 토로해주시기도 하더군요.
    글쓴이님의 블로그를 조금 둘러보고 번역가에 대해 쪼끔! 이나마 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저도 번역을 하는 사람과 번역이 필요한 사람들이 더 만족스러운 서비스를 만들 수있도록 노력해야겠네요. :)

    • 제 글이 그런 기능을 했다니 저도 기쁩니다. 부디 번역가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만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4. 번역가에 대한 정보를 찾던 중 우연히 이 블로그를 알게 되었습니다. 책 읽을 때 집중되는 그 느낌이 좋아서 번역하면서 먹고 살면 행복할 거라 생각 했는데 출판 번역을 하면서 살면 입에 풀칠하기 간당간당하다는 현업자 분의 절망적인 댓글을 읽고 손대지 않고 있는데 니 글을 보니 어느 쪽이 맞는지 잘 모르겠네요.
    1년에 7만 5천불이면 한화로 한달에 400 훨씬 그 이상인데 우리나라 20년차 베테랑 번역가 권ㅇㅇ 씨 가 한달에 400만원 정도 수입이라고 하셨는데 왜 이렇게 외국과 상황이 다른거죠? 한국에서도 올리신 통계치에 근접하게 벌수 있나요?

  5. 안녕하세요
    한국에서 번역하시는 분들이 원고지에 직접 작업하시는 것은 아닙니다.
    한글과 같은 소프트웨어에서 작업할 경우 글자수, 원고지로는 몇 장 이런 문서통계 정보가 나옵니다.
    아마 과거에 원고지 기준으로 단가를 정하던 관행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도 원고지 기준으로 요율을 정하는 것 같습니다.
    좋은 정보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그렇군요. 문서통계 정보에 원고지 기준이 있어서 그런 것이군요. 전 초등학교 백일장 대회 이후 원고지에 써 본 적이 없어서… 알려 주셔서 감사합니다.

  6. 추가정보 알려드리겠습니다. 한국어 2백자 원고지는 알파벳형 문자 400자가 됩니다.
    단 띄어쓰기나 기타 문장부호는 한국어와 마찬가지로 1칸으로 처리됩니다
    저도 글자단위로 분량을 잴 땐 워드에서 생성하는 원고지 포멧에 한번정도는 긁어붙여봅니다
    공백제외 글자수 세주는 것보다는 뭔가 가시적으로 더 마음이 편해지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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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