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말고 내 삶을 내 마음대로

남의 시선 의식하지 않고 살기, 그게 말처럼 쉽지는 않습니다. 성격이나 어릴 때 자란 환경 등에 따라 사람마다 많이 다르겠지요. 하지만 한국처럼 다들 관계망 속에 꽉 끼여사는 사회에서는 남의 시선을 덜 의식하고 사는 것이 분명히 정신건강에 좋을 겁니다.

저는 본래 좀 소심하고 자랄 때도 늘 남의 시선을 많이 의식하도록 교육을 받아서, 제 삶을 제 뜻대로 살려고 했을 때 참 쉽지가 않았습니다. 누가 딱히 결사반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스스로 남의 눈을 의식해서 그어 놓은 선에 자꾸 갇히더군요. 결국 에라 모르겠다 하고 사고를 쳤지만요. 제 인생에서 그런 사고를 몇 번 쳤는데, 전혀 후회하지 않습니다. 물론 고생도 좀 했지만 실은 오늘날의 제 행복은 다 그런 사고들(?) 때문이거든요. 자세한 것은 묻지 마시고…

남의 눈 의식하지 않고 사는 첫 걸음이 어쩌면 청소 안 하기 아닐까 싶습니다. 학교다닐 때 교실 바닥이 반질반질 윤이 나도록 닦고 군대가서 또 내무반을 그렇게 반질잔질 윤이 나도록 닦다 보니, 청소라면 저는 지긋지긋합니다.

그런데 청소 하지 않고 너저분하게 살면서 그걸 잘했다고 당당히 내세우는 문구도 있더군요. 한번 보세요.

저걸 집이나 카티지에 걸어두면 손님 방문을 앞두고 청소를 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게으름을 장려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남을 의식해서 스트레스를 받을 필요도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저도 하나 사서 걸어둘까 하는데, 청소에 관해서는 아직도 아내와 합의가 되지 않은 부분이 있는지라…  

그런데 위의 문구보다 조금 더 당당한 문구가 있습니다. 형식적인 사과조차도 하지 않고 도리어 messiness를 적극적으로 내세우거든요. 한번 보세요.

위의 두 사진 다 자세히 보면 일부러 흠집을 내 놓고 어떤 부분에는 색이 바랜 것처럼 처리를 해 두었습니다. 멋지죠?

그러고 보니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납니다. 아이들에게 장난감 치우라고 잔소리하면 아이들의 창의성이 죽는다고요. 그럼 대신 치워줘야 하나요? 아니죠. 같이 놀아줘야죠. 그러느라 집안 정리도 잘 안되고 빨래도 밀리고 바닥은 음식과 흙으로 찐득이겠지만요.

그런 당당함의 연장선 상에 있는 또 다른 사인이 있습니다.

어쩌다 방문하는 손님을 위해 우리가 하던 일을 멈추고 집 청소를 시작하지는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엿보이죠? 

남의 이목에는 신경을 꺼버리고 정말 중요한 것에만 집중하는 삶… 여러분은 그런 삶을 살고 계신가요?

공부방이니 공부도 한 줄.

위의 첫 번째와 세 번째 문구에는 sorry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런 sorry는 관례적으로 하는 말이지 정말 미안한 느낌을 가지거나 무엇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 아닙니다. “Sorry, you missed it”은 “안됐지만 널 위해 집 청소를 할 맘은 조금도 없어” 정도의 의미입니다. 거절을 하거나 부정문을 말하기 전에 저런 식으로 짧게 삽입하는 sorry는 무게가 거의 실리지 않죠. 요즘 한국에서는 저런 것을 “영혼 없는 사과”라고 하더군요. 저런 sorry를 가끔 영화같은 데서 “죄송하지만”으로 번역해 둔 것을 보게 되는데, 그런 번역은 너무 무겁습니다. 영혼 없이 가벼운 sorry는 번역도 가볍게 해 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처럼 “안됐지만” 정도로 번역하거나 아예 빼버리는 것도 괜찮을 듯 합니다.

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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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