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 여러분, 시간이 흐를수록 유리해지는 게임을 합시다(1)

전쟁 이야기 한번 하겠습니다.

 

저는 평화주의자이지만 전쟁의 역사와 전략에는 관심이 많습니다. 전략이란 말은 오늘날 어디에나 쓰이지만 사실은 전쟁을 위한 작전 계획이 전략이죠. 그렇기 때문에 전략만큼 절실하고 기발하고 현실적인 아이디어가 많이 들어간 곳이 없다고 봅니다. 생사가 걸린 문제이니까요.

 

전략 중에서도 시간을 이용한 전략은 대규모 전쟁에서는 필수적인 전략인 것 같습니다. 2차대전시 독일군과 소련군이 벌인 레닌그라드 전투는 매우 유명한 전투여서 영화와 다큐멘터리에 많이 나오는데, 이 도시가 워낙 강력한 저항을 하는 바람에 독일도 단번에 함락시키지 못하고 섬처럼 고립시켜 두고 계속 진격을 하지요. 그때부터 이 도시를 두고 독일군과 소련군이 긴 시간 싸움을 벌입니다. 공급이 차단된 상태에서 시간이 가면 이 도시는 결국 배가 고파서 무너지고 말 것이라는 것이 독일군의 생각이었습니다. 그 후 벌어진 처참한 상황은 이차대전의 가장 끔찍한 장면들 중의 하나지요. 하지만 전체적인 전세가 역전되어서 독일이 이 도시를 아사시켜 함락시키는 것은 실패했습니다.

 

RIAN archive 324 In besieged Leningrad.jpg
 

 

그런데 소련이 어떻게 전세를 역전시켰는지 아십니까? 역시 시간 싸움이었습니다. 모스크바 근처까지 밀렸던 소련은 겨울을 틈타 독일의 긴 보급로를 계속 파괴하면서 버팀으로써 수많은 독일군을 얼어 죽게 만들었습니다. 물론 러시아의 엄청난 군인 숫자도 중요한 요인이었지만, 전황을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은 것은 그 해 따라 유난히 추웠던 겨울이었습니다. 추위와 시간이 전쟁의 반 이상을 해 준 것이지요. 다음 해 겨울도 마찬가지고요. 우리는 2차대전의 승패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에서 갈렸다고 흔히 알고 있습니다만 그건 서구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많이 봐서 그래요. 물론 그것도 어느 정도는 맞지만, 2차대전의 진정한 승패는 사실 소련에서 갈렸습니다. 소련의 시간 싸움이 결국은 2차대전의 향방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동부전선에서의 이런 전과가 없었다면 노르망디 상륙작전은 불가능했고, 설사 성공했다 하더라도 육지에서 진격하지도 못했을 테니까요.

 

이런 시간 싸움은 사실 고구려의 을지문덕 장군도 사용했었습니다. 우리는 살수대첩이라는 한 전투에서 을지문덕 장군이 수나라 군대를 한 방에 물리친 것처럼 알고 있지만, 실은 청야전법이라고 해서 온 나라의 곡식과 집을 다 철수시키고 불태우고 해서 수나라 군대가 군수물자를 현지에서 조달할 수 없도록 만들어 놓았습니다. 말이 쉽지 113만명의 군인이 하루 먹고 입으려면 얼마나 많은 물자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런데 수나라 군대가 요동성을 함락시키지 못해 시간이 자꾸 길어지자 조바심이 났고 급기야 30만명의 별동대를 평양으로 직접 보냈습니다. 고구려 깊숙이까지 군대가 들어왔으니 보급선이 너무 길어진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고구려군은 마치 곧 항복할 것처럼 하면서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계속 시간을 끌다가, 드디어 지쳐서 더 이상 견디지 못할 지경이 된 수나라 군대를 결정적인 시간에 패퇴시킨 것이지요.

 

File:Eulji Mun-deok.png

 

사람의 성공도 비슷한 면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은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는 요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면 상황이 점점 더 유리해지는가, 아니면 시간이 흐를수록 상황이 점점 더 불리해지는가 하는 것은 인생의 성패를 가르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봅니다. 축구할 때 한두 골 먼저 넣어 놓은 팀은 위험을 무릅쓰지 않고 안전한 방어전을 펼치면서 기회가 오면 가끔 역습을 하는 정도로 게임을 운영합니다. 반면에 한두 골이 뒤진 팀은 후반전 30분 정도 남으면 거의 미칠 지경이지요. 시간이 원수입니다. 시간만 더 있으면 충분히 해볼 만한 전력인데도, 야속하게도 시간이 계속 흘러가고 패색이 짙어져 가니까요. 여러분께서는 시간이 흐를수록 유리해지는 삶을 사십니까? 아니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초조해지는 그런 상황에 처해 있습니까?

 

시간을 내 편으로 만든다는 것만큼 대단한 전략은 없습니다. 그것만큼 확실한 성공 전략은 없습니다. 시간이 흘러갈수록 점점 더 나에게 유리하게 되도록 상황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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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