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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가의 직업병(5): 진짜 원인은 욕심

밴디지를 붙인 손가락과 손목 보호대를 한 사진까지 올리고 보니 저의 부끄러운 모습을 다 보여드린 것 같습니다. 바쁘게 일하느라고 잠자는 시간이 흐트러졌던 것, 가족과의 시간을 가지지 못한 것 등등 사진으로 보여 드릴 수 없는 부끄러운 모습도 많았고요. 번역가의 직업병 시리즈를 마감하면서, 이 모든 증상들의 근본 원인을 생각해 보았는데 역시 그것은 어리석음과 욕심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어리석음은 IQ의 문제가 아니라 종합적 분별력과 관련된 것인데, 무엇이 정말 중요한 것이고 무엇이 사소한 것인지를 분별하는것, 무엇이 힘써서 해야 할 일이고 무엇이 무시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인지, 무엇이 지금 해야만 하는 일이고 무엇이 나중에 해도 괜찮은 일인지, 어떤 것을 어느 정도 하는 것이 적당한 것인지를 분별하는 힘을 말합니다. 이런 분별력은 경험과 성찰에 의해 자라고, 욕심에 의해 흐려지고 흐트러지고 무너집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앞에서 말한 모든 증상들, 즉 스트레스, 손가락과 손목의 무리, 눈의 무리, 허리의 무리 등은 다 번역 일 그 자체에서 온 것이라기보다는 나의 한계를 설정하고 그 한계 안에서 일하는 겸손하고 소탈한 태도, 그리고 그 한계 안에서 일을 잘 하기 위해 시간이 있을 때 장기적으로 미리 꾸준히 투자를 하는 지혜가 결여되었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힘들지만 음성 인식 프로그램을 미리 익혀두었다면, 같은 시간 내에 훨씬 더 많은 양을 쉽게 처리하고 눈, 손목, 허리에 부담도 훨씬 경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CAT tool도 마찬가지고요.

 

또 번역가의 커리어가 마라톤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자기의 정신적 육체적 힘을 고갈시킬 정도로 무리하게 프로젝트를 수주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단기적인 수입 증가에는 보탬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결국 어떤 면에서도 도움이 되지 않는 괜한 헛심 쓰기에 불과하니까요.

 

그렇게 보면 어리석음과 욕심이란 것이 또 하나의 직업병이라기보다는, 번역가의 모든 직업병을 만들어내는 근본 원인이라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마라톤과 같은 번역가의 길에서 어리석음과 욕심을 제거하고, 매일 즐겁게, 행복하게, 친절하게, 감사하게 걸어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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