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가의 직업병(1): 프리랜서 번역가의 스트레스 줄이는 법

이런 제목으로 제가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 드릴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입니다. 하긴 뭐 그건 제가 하려고 해도 잘 안되는 거지만. 번역가는 여느 직업과 마찬가지로 특정 작업을 반복적으로 하기 때문에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긴장이 많이 되고 그래서 다양한 증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런 증상을 경험하지 않은 분은 자기 관리를 잘 해 나가시는 분일 것입니다. 그러나 상당히 많은 번역가들은 저와 비슷한 증상을 경험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몇 번에 걸쳐 번역가의 직업병이라 할 만한 것들을 나열하고 그것에 대한 저 나름대로의 대처 방법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정신적 스트레스

 

 
 

정신노동자에게는 다양한 스트레스가 있습니다. 물론 번역가는 사람에게서 받는 스트레스, 출퇴근 스트레스 등은 없으니까 다른 정신노동자들보다는 상황이 좀 나은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번역 작업 자체와 관련된 스트레스는 있을 수밖에 없지요. 일이 마구 몰려올 때 어떤 일부터 처리해야 하는지 모르기도 하고, 마감 시간에 쫓겨 기본적인 생활이 흐트러질 정도로 무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요. 이런 스트레스를 줄이려면(없애기는 힘들다고 봅니다), 다음과 같은 방안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번역량을 줄인다

 

이것은 참 한심한 답 같지만 그래도 이것이 가장 근본적인 답입니다. 자신의 하루 처리 기준보다 양이 많으면 프로젝트를 과감히 거절해야 합니다. 자기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만 프로젝트를 받는 것이지요. 그래서 프로젝트 제안이 오면 그것 자체만 보고 결정하지 말고, 프로젝트 로그를 쳐다보면서 결정을 해야 합니다. 프로젝트 로그에 적혀 있는 일이 이미 너무 많으면, 과감하게 새로운 일을 거절해야지요. 번역은 마라톤이고 그 마라톤의 주체인 나를 잘 아껴주어야 하거든요. 사실 전에도 말씀드렸듯이 무엇을 하기로 결정하는 것보다 무엇을 하지 않기로 하는 결정이 훨씬 어려운 결정입니다. 그래서 하수들은 그런 것을 잘 못하고 고수들은 그것을 잘 합니다. 그런 결정은 내가 나 자신을 위해서 내려야 합니다. 그런데 달리 생각해 보면 이런 결정을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내릴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입니까?

 

“이 프로젝트를 거절했을 때 고객이 다시 찾아주지 않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하실 수 있는데, 그런 이유로 일이 오는 대로 계속 받아들이면, 즐겁게 할 수도 있었을 번역이 졸지에 고된 노동이 되고 맙니다. 행복한 번역가로 일하시려면 모름지기 거절하실 줄 알아야 합니다. 거절할 때는 여러 말로 변명하고 미안해 하실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저 “지금 다른 프로젝트가 많아서 지금 제안한 프로젝트는 받을 수가 없다, 미안하지만 다른 번역가를 찾기 바란다.”라고 짤막하게 답을 보내면 됩니다.

 

그러면 에이전시는 오히려 그렇게 말하는 번역가를 신뢰할 것입니다. 자기의 한계를 넘는 많은 프로젝트를 받아 결과적으로 질이 낮은 번역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질이 높은 번역을 해 나가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지요. 그리고 그렇게 거절해도 다음에 또 찾아옵니다. 매번 번역할 때마다 자신의 기준을 가지고 질 높은 번역을 해내는 한, 에이전시들은 그런 번역가를 두고 자기들끼리 경쟁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마음 편히 거절하십시오. 물론 정중하고 단호한 말투로.

 

또 하나의 가능성은 데드라인을 늦추는 것인데, 이것도 전에 다른 데서 제가 말씀드렸지만 대부분의 경우 에이전시들은 데드라인을 늦출 수 있는 여지가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데드라인을 늦추면 프로젝트를 맡을 수 있겠느냐고 물어 오는 수도 있습니다.

 

 

프로젝트 로그를 쓴다

 

프로젝트 로그를 쓰면 어느 프로젝트가 양이 얼마인지, 데드라인이 언제인지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내가 하고 있는 모든 프로젝트들을 내가 한눈에 보며 관리할 수 있고, 새로운 프로젝트가 왔을 때 내가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좀 부수적인 이야기인데요, 끝난 프로젝트에 통쾌하게 줄을 쫙 그으면, 심리적 만족과 시각적 명료성을 동시에 얻을 수 있습니다. 한 번 해 보세요. 상당히 기분이 좋습니다. 이것도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작은 아이디어일 수 있습니다.

 
Bryan
Bryan

브라이언은 의료분야에서 한영번역을 하는 번역가입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작은 시골 마을에서 아내와 둘이 삽니다. 여행과 독서와 음악과 커피를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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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