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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은 과연 왕인가?

어쩌다 보니 블로그에 글을 쓴 지가 꽤 지났습니다. 연말에 무척 바빴고 그 뒤에는 한동안 아프고 하다 보니 블로그를 잊고 있었는데, 최근 땅콩 회항 사건 뉴스를 보면서 한국 사회에 대해 다시 한 번 성찰해 보고 또 제 삶도 뒤돌아 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고, 그 성찰이 이 글을 쓰게 만들었습니다.

 

뉴스를 접하고 나서 처음에는 황당했고, 조금 있다가는 극도의 분노가 일어났고, 그러다 시간이 좀 더 지나자 슬퍼졌습니다. PD 수첩이라는 프로에서 이와 관련된 것을 심층적으로 다루었다고 해서 보았는데, 내용인즉, 한국 사회의 갑질은 오랜 정경유착의 역사에서 기인한 것이고, 갑은 무슨 짓을 해도 결국은 다 빠져 나오는 것을 반복적으로 경험하다 보니 이제는 눈에 뵈는 것이 없는 지경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슬픈 것은 그런 갑들에게 억울하게 갑질을 당하는 을도 오랜 역사를 통해 상황이 어떻게 돌아간다는 것을 뼈저리게 체득한지라 이제는 ‘알아서 긴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잘못도 없는데 백화점 고객이 자신을 오해해서 소리 지르고 “무릎 꿇어!”라고 하니 백화점 주차 안내 알바를 하던 대학생은 일단 무릎을 꿇었다는 겁니다. 덩달아 아무 상관도 없던 다른 주차 알바생들도 무슨 일인지 알아보려고 근처에 왔다가 “너희들도 꿇어!”하는 고객의 한 마디에 역시 다들 일단 무릎부터 꿇었다고 합니다. 이건 몰상식한 고객의 갑질이 화가 나는 상황이 아니라, 더 이상 옳고 그름을 따져보지도 않고, 아니 따져 봤자 을로서는 어차피 손해 보게 되어 있음을 알기에 따질 생각도 안하고, 일단 무릎부터 꿇는 우리 젊은이들의 모습 때문에 한없이 슬퍼지는 장면입니다. 어쩌다 한국 사회가 이런 지경까지 되었나 싶어서 한없이 슬프고 우울해 집니다.

 

정의를 논하고 싶어서 이 글을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물론 정의도 논해야죠. 기대가 그다지 높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사법부의 정의감과 양심에 일말의 기대를 걸어 봅니다. 나아가 재판이 어떻게 되든, 대한항공은 이미 제게는 끝입니다. 어차피 저야 비행기를 많이 타지 않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살면서 가족들이 탄 것까지 생각하면 한 천 만원 정도는 대한항공에 낸 것 같은데, 이미 낸 돈은 어쩔 수 없지만 앞으로는 정말 한 푼도 안 쓸 겁니다. 대한항공이야 소비자의 이런 작은 저항을 우습게 여길지 몰라도, 이런 것도 안 하고 아무 생각 없이 세일 중이라면서 대한항공 다시 타면 세상에 희망이 없을 것 같아서 그럽니다.

 

그러나 제가 이 글을 시작한 것은 행복을 논하고 싶어서입니다. 저는 이렇게 믿습니다. 행복은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힘이 세어져서 다른 사람들에게 갑질을 할 수 있을 때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온 세상이 그렇게 믿으니 우리도 어렸을 때부터 잘나야 하고 힘을 길러야 하고 돈을 벌어야 하며 좋은 인맥을 통해 사다리를 타고 위로 끝없이 올라가야 한다고 배웠지만, 그렇게 올라가서 남을 짓밟는 것은 정의롭지 않을 뿐만 아니라 진정한 행복이 아니라고 저는 믿습니다. 다른 사람의 상처와 아픔과 불편과 수치심을 나의 행복으로 삼고 미소를 지을 수 있다면 그런 사람은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병자입니다. 진정한 행복은 함께 더불어 살 수 있을 때 오는 것이고, 또 행복은 나눌 때 더 커지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우리가 가장 행복한 때가 언제입니까? 사람마다 다를 순 있겠지만 가족들이 함께 식탁에 있는 음식을 나누어 먹을 때 아닐까요? 기독교에서는 그런 식탁의 나눔을 ‘하나님 나라’의 상징으로 사용합니다. 누구나 눈치 보지 않고 음식을 나누고 삶을 나누고 서로 인정하고 서로의 잘못을 고백하고 서로 용서하고 서로의 아픔을 안아 주는 곳이 가족의 식탁입니다. 그런 것을 사회로 확장할 수 있다면 그것이 곧 하나님 나라일 것입니다.

 

경제적인 용어로 말하자면 공정한 거래를 통해 거래의 쌍방이 다 이익을 얻고 둘 다 행복해 지는 거래 관계, 그것이 물건을 사고 파는 관계이든 고용 관계이든 쌍방이 서로를 존중하고 내가 가진 것을 줌으로써 상대방을 행복하게 하고 상대방으로부터 그 공정한 대가를 받는 것,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경제일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제가 오늘 좀 논하고 싶은 격언이 있는데, ‘고객은 왕’이라는 말입니다.

 

먼저 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오래 전 일이지만 제가 한국에 살 때 아웃백이라는 레스토랑에 간 적이 있는데, 주문을 받으러 온 웨이트리스가 무릎을 꿇고 주문을 받는 겁니다. 너무 놀라서 도대체 왜 이러냐고 했더니 자기네 레스토랑 정책이 그렇답니다. 주문을 받을 때 무릎을 꿇고 받는다구요. 저는 그것이 기분 좋은 서비스가 아니라 너무 당황스럽고 미안하고 안쓰럽고 개인적으로 매우 불편했습니다. “이렇게 예쁜 아가씨가 도대체 왜 나 같은 사람에게 무릎을 꿇고 주문을 받아야 하나?” 답은 간단하죠. 제가 잘 생겼거나 똑똑해서가 아니라 제가 돈을 내는 고객이었기 때문이죠.

 

그 레스토랑이 아직 영업을 하는지, 한다면 아직도 그런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서비스조차 가능하게 하는 컨셉, 백화점 여직원들에게 반말하고 주차안내 알바생들 무릎을 꿇릴 수 있게 하는 컨셉이 바로 ‘고객은 왕’이라는 컨셉입니다.

 

제가 무슨 문헌 조사를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이런 ‘고객은 왕’이라는 컨셉을 누가 왜 만들어서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는 뻔합니다. 좋게 생각하면 고객의 필요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말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정도의 말을 하려고 ‘왕’이라는 표현을 쓰면 안되죠. 고객 만족 경영이라는 좋은 컨셉이 몇십 년 전부터 쓰여 왔으니까요(저는 이 컨셉은 상당히 좋아합니다).

 

‘고객이 왕’이라는 말은 고용자가 자신의 피고용자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피고용자들이 몰상식과 모욕감을 감수하면서까지 고객의 비위를 맞추어서 거래를 성사시키고 돈을 벌어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것은 피고용인을 불행하게 만들고 결국은 그런 피고용인이 있는 회사에도 득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얘기를 듣고도 아직도 고객이 왕이라고 생각하는 분이 있다면 어쩔 수 없죠.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고객은 왕’이라는 생각은 결코 기업가의 생각이 아니고, 기업가가 종업원들에게만 강요하는 생각일 뿐이라는 것을. 조현아씨가 고객을 왕으로 생각했으면 다른 고객이 있는 자리에서 그렇게 직원들에게 난동을 부리고 수백 명의 고객이 탄 비행기를 함부로 돌리고 사과 방송도 안하고 했겠습니까? ‘고객은 왕’은 종업원들에게만 달달 외우게 하는 거짓 신조이고 정작 대기업의 소유자는 고객을 ‘발 사이의 때’ 만큼도 여기지 않는 극단적인 고객 무시, 고객 비하의 모습이지요. 그러므로 피고용인들은 이런 말을 거부해야 합니다. 피고용인이 되었다고 인격적 모욕감을 감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내가 내 비즈니스를 소유하든 아니면 다른 사람에게 고용되어 일하는 입장이든, 고객은 존중해야 할 대상이지 왕은 아닙니다. 또한 내 목적을 위해서 나를 부자로 만들어 주기 위해서 존재하는 얼굴 없는 다수나 숫자로 취급해서도 안됩니다. 참, 아이러니입니다. 고객을 그렇게 극단적으로 무시하는 조현아씨가 고객 서비스 담당 임원이고 고객을 왕으로 대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직원들을 그렇게 들볶았다니. 이것이 고객을 고객으로 대하지 않고 고객을 왕이나 발 사이의 때로 여기는 두 잘못된 태도의 결말이 아닌가 합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고객이 왕’이라는 허황되고 직원 들볶기용인 컨셉이 소위 소비자들에게도 흘러 들어가서 소비자들이 자신들이 정말 ‘왕’인줄로 착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왕처럼 대접받는 것이 정당한 줄 아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왕처럼 대접받지 않으면 손해를 보고 부당한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고객으로서 갑질을 하면서 느끼는 sadistic한 쾌감을 즐기는 천박한 속물이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 왕은 없습니다. 대한민국에도 캐나다에도 미국에도 왕은 없고 굳이 있다면 국민이 왕입니다. 고객은 왕이 아닙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는 고객이 있다면 머저리일 뿐이죠. 도대체 고객이 왜 왕입니까? 고객은 어디까지나 고객이죠. 내 물건이나 서비스를 삼으로써 이득을 보는 사람이 고객입니다. 그러니까 고객은 나와의 거래를 통해서 이득을 얻기 위해 거래를 하기로 선택하는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거래가 아니라 구걸이겠죠. 내가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거래를 하는 것이라면 나도 고객도 서로 이득을 위해 동등한 거래를 하는 것입니다. 물론 물건이나 서비스를 파는 나로서는 그 반대급부로 돈을 받으니까 고객은 ‘매우 고마운’ 존재이고 저의 친절과 존중을 받아 마땅하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왕은 아니죠. 절대 아니죠.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소리죠. 고객은 절대로 왕이 아니고 어디까지나 고객입니다. ‘고객은 왕’이라는 이 한심한 격언이 아무런 성찰도 없이 경영 자문 도서들, 각종 인터넷 사이트들, 신문 방송, 어중이떠중이들의 강연에서 마구 전파되는 바람에 온 사회가 집단적 착각에 빠진 것이 아닌가 합니다.

 

고객이 왕이 아니라면 고객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어떻게 대하는 것이 맞을까요? 여기서부터는 일반적인 상황을 놓고 말하기보다는 프리랜서 번역 비즈니스라는 맥락에서 말하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번역가의 고객을 생각하며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말해야 할 것은 고객은 매우 고마운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늘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대해야 합니다. 또한 고객의 필요를 잘 이해하려고 애를 쓰고, 나의 상품이나 서비스가 그들의 필요를 잘 충족시켜 주도록 노력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고객을 대하는 가장 중요한 태도일 것입니다.

 

두 번째로는, 모든 사람이 내 고객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번역가의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번역가의 고객도 한정될 수밖에 없습니다. 번역을 막 시작한 분들은 고객 수를 늘려 가는 것이 급선무이겠지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어차피 고객을 골라가면서 일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이 프리랜서 번역 비즈니스입니다. 번역이 필요한 모든 사람이 내 고객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고객도 나를 고르지만 나도 고객을 고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화와 원칙에 바탕을 둔 가격 정책은 핵심적인 전략입니다. 원칙에 바탕을 두고 가격의 범위를 정하고 또 나의 전문 분야의 프로젝트를 중심으로 고객층을 선택적으로 만들어 가야 합니다. 어떤 은행은 어떤 종류의 고객들을 ‘짤라 버려서’ 순이익이 급증했다고 합니다. 어떤 사업가는 성공의 핵심이 골치 아픈 고객들을 잘 자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사람은 최소 주문 단위를 대폭 인상함으로써, 전화해서 자기에게 불평하고 욕하고 반품하겠다고 위협하고 별의별 말도 안 되는 요구들로 자신을 괴롭히는 대부분의 고객을 제거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세 번째로, 고객의 요구에 합리적으로 대처해야 합니다. 고객과의 관계에서 핵심적인 것은 상호간의 이익을 위해 쌍방이 동등한 관계에서 거래를 하는 것입니다. 사실 고객은 왕이 아니라 그냥 고객이며, 그 고객 중에는 훌륭한 고객, 감사한 고객, 존경 받아 마땅한 고객도 있고, 반면에 주제를 모르고 설치는 상종 못할 사람도 있다는 것은 제가 굳이 주장할 필요도 없는 당연한 상식 아닐까요? 번역 고객 중에도 백화점 주차요원 무릎 꿇린 아주머니처럼 무개념인 사람들이 가끔 있습니다. 자신이 고객이니 자신이 왕처럼 굴어도 되는 줄 아는 머저리들이죠. 번역가의 시간대에 대한 의식 없이 시도 때도 없이 전화하거나, 스카이프를 항상 켜 둘 것을 요구하거나, 주말에 일을 보내서 월요일 아침까지 일을 마쳐달라거나, 미니멈 차지를 무시하겠다거나, 까다로운 최종 고객의 요구를 여과 없이 번역가에게 전달해서 실행해 달라고 하는 등 별의 별 ‘고객’이 다 있습니다. 그런데 번역가로 살면서 자신의 일과 삶에 긍지를 느끼지 못하고 불평불만이 가득한 번역가들은 가만히 보면 위와 같은 소위 ‘고객’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하니 당연히 불만은 많고 시간은 없고 행복하지 않은 거지요. 고객이 어쩌다 하는 요구나 부탁은 들어줄 수도 있지만 상습적으로 저런 요구를 하는 고객에 대해서는 요구를 거절하거나 아예 거래를 끊어버려야 합니다. 그러면 몇 가지 좋은 일이 생깁니다. 일단 고객이 “어? 그런 요구가 무리한 요구였나?”하고 깨닫고 그런 요구를 하지 않습니다. 아니면 아예 그런 요구에 대해 payment를 하게 되니까 일로서 할 수도 있지요. 다른 좋은 일은, 그런 무리한 고객이나 그런 고객의 요구가 없으니까 번역가가 시간이 많아지고 행복합니다.

 

고객과의 장기적 협력과 그것을 통해 장기적으로 서로가 이익을 보려면, 고객과 서로 평등한 관계, 서로의 영역과 역할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관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것이 갑질 없이 매번 웃으면서 거래를 해 나갈 수 있는 토대입니다. 그런데 그런 관계는 ‘고객이니까’ 고개부터 숙이고 보는 태도를 가져서는 결코 성취할 수 없습니다. 고객을 존중해야 하지만, 그래도 혹시 무리한 것이 있으면 따지고 오해가 있었으면 풀어서 장기적인 협력관계를 번역가 스스로가 구축해 나가야 합니다.

 

식당에서 음식 하나 주문해 먹는 작은 거래이든 아니면 여러분의 본업인 번역 서비스 거래이든, 여러분이 고객이든 아니면 여러분이 서비스 제공자로 상품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이든, 남의 인격을 짓밟지도 말고 또 남에게 짓밟히지도 말고, 어디까지나 감사와 존중의 정신으로 모든 사람을 대하며, 머리를 들고 자존감 있게 살아갑시다. 그것이 정의이고 그것이 행복의 길이 아닐까요? 또한 그것이 이 병든 사회, 무엇이 정의인지 누가 왕인지 등에 대해 혼동을 겪고 있는 오늘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상식과 양심을 회복시켜 갈 수 있는 발걸음일 수 있지 않을까요?

 

새해 첫 글인데 흥분한 상태에서 쓰다 보니 과격한 표현들이 쓰인 것 같은 생각도 듭니다. 너그러이 용서해 주십시오.

4 thoughts on “고객은 과연 왕인가?

  1. 정말 공감이 가고 동의하는 글입니다. 한국은 고객이 왕이다라는 생각이 심하다는 것을 외국 여행에서 느꼈었어요. 또 다른 나라는 어떨지 모르지만 제가 다녀온 곳은 고객은 고객일 뿐이었어요. 작은 마켓부터 항공 서비스까지 그런걸 느꼈는데 처음엔 한국의 고객 중심 대접에 길들여져서 불친절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짧지 않은 시간을 지내면서 그게 정당한 것이고 근로자 권리를 지켜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국의 환경을 생각하니 부럽더라구요.. 우리가 그렇게 받는 만큼 반대로 우리가 서비스를 하는 입장이면 똑같이 하길 요구받으니까요. 고객이라고 직원의 인격까지 침해할 권리는 없는데 우리 사회는 특히 서비스업에서 지나친 경우들이 많은거 같아요. 이 사건들로 크게 이슈화 되어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었네요. 잘 읽고 갑니다:)

  2. 댓글 감사합니다. 캐나다 얘기를 좀 하자면 처음 이민 왔을 때는 아무 상점도 문을 안 여는 공휴일이 한 둘이 아니어서 참 이상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직원들도 가족들과 함께 쉴 수 있는 거지요. 또 저녁이 되면 다운타운을 제외하면 웬만한 가게들, 쇼핑몰들은 9시 정도면 다 문을 닫아서 갈 곳이 별로 없어요. 집에 가야 돼요. 그래서 24시간 영업과 24시간 배달에 익숙한 한국 이민자들은 캐나다가 재미 없는 천국이라면서 재미 있는 지옥인 한국을 그리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살다 보면 안 되는 것 하나도 없고 불편한 줄도 몰라요. 🙂

  3. 좋은 글 감사합니다.
    많을 것을 느끼고 깨우치게 해 주는 정말 좋은 글이네요..
    감사합니다.

    1. 공감해 주시고 댓글 달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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